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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특징

현대 미술의 특징 중 하나는 작가가 수공예적 솜씨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조각가가 설계도를 작성해서 공장에 가져다주면 공장의 인부들이 조각가가 원하는 대로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준다. 심한 경우 다른 누군가의 작품을 그대로 복제해서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예술로 인정받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 미술은 작가가 직접 제작하지 않은 작품을 예술 행위로 인정한다. 



  그 원인의 제공자는 사진이다. 사진술 발견 초기에 사진은 기존 미술의 미학적 담론과 형식을 모방해서 예술이 되고자 했다. 이제 현대 미술은 거꾸로 사진을 모방해서 예술이 되려고 한다. 현대 미술의 현상은 따지고 보면 사진 작품을 제작해서 예술로 인정받는 행위와 많이 닮아 있다. 사진은 기계적인 프로세스에 의해서 현상과 인화 작업이 이루어졌고, 촬영 행위 또한 카메라의 자동기계 속성상 작가의 장인적 솜씨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진은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편으로 사진은 완벽하게 현실의 외형을 재현한 것으로서 플라톤(Platon) 이후 끊임없이 따라다닌 미술의 모방론적 예술 관념을 완벽하게 실현시킨 것처럼 보였다. 사진술 발명 이후, 사진 이미지는 인간의 기억을 대체하는 표상 체계로 자리 잡아 왔고, 이제는 경험 자체를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표상을 통한 경험을 마치 실제의 경험인 것처럼 여기도록 만드는 힘이 사진 이미지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 이미지는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현실 그 자체는 아니며, 현실의 외형을 복제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게다가 무한 복제가 가능하고, 복제들 사이에 차이가 없다. 원본의 의미가 사라진 시점에서 복제들은 급기야 ‘진짜’처럼 작용하고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원본을 대체한 ‘가짜’, 바로 이것이 사진의 ‘시뮬라크르(simulacre)’이다. 



  ‘시뮬라크르’는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 Deleuze)가 확립한 철학 개념으로 원래 플라톤에 의해서 제시된 이데아(idea)와 구별되는 철학적 명제다. 플라톤은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원형인 이데아, 이데아의 복제물인 현실, 현실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는 복제하면 복제할수록 이데아와 멀어지게 되므로 현실을 복제한 예술 작품을 가치없는 것으로 보았다. 가령, 사람을 그린 회화 작품은 이데아를 복제한 불완전한 인간을 다시 또 복제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불완전한 ‘가짜’, 즉 시뮬라크르인 것이다. 



그러나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시뮬라크르의 진정한 개념적 정의는 ‘가짜’가 ‘진짜’로 둔갑해서 자신이 ‘가짜’임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가짜’임을 스스로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뮬라크르는 원본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의 공간을 창조해가는 역동성과 자기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사진처럼 현실을 모방하는 미술의 재현 행위는 전통적인 재현의 방식에서 벗어나 이미지의 무제한 복제와 대상이 없는 이미지의 재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결국 이 시점에서 플라톤의 모방론적 예술관은 그 권위와 힘이 상실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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